• 작성일자: 2012-06-11
  • ◎ “위기를 기회로… 우리 사전에는 ‘구조조정’ 없다”

  • “우리 회사가 일본에 수출한 제품이 상표만 바뀌어 한국의 자동차회사로 역수출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 강서구 화전동 화전산업단지에서 자동차 엔진의 조립설비를 제작하는 화인의 이상준 대표(사진)는 이렇게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아중공업 기계연구소에서 일하다 1989년 양계장 축사를 빌려 창업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완성차 업계는 변변한 시설도 없는 이 회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우리 제품에 큰 관심을 보인 일본 회사에 수출한 우리 제품이 다시 국내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국내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이 제품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설명해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창업한 지 23년 된 화인의 성장과정을 보면 굴곡이 적지 않다. 1990년대 중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돌연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연간 80억 원에 이르던 매출이 30억 원까지 뚝 떨어졌다. 이 대표는 “외환위기로 주문량이 급감하는 바람에 절박한 심정으로 환경폐수처리설비와 신소재(소재시트)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사업이 지난해 매출 418억 원 중 약 24%를 차지하면서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면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됐다. 국내 경기도 내리막을 걸으며 이공계 인력들이 갈 곳을 잃자 이 대표는 ‘인재채용의 기회’가 온 것을 직감했다. 그는 “우수한 연구인력은 평소 중소기업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달랐다”며 “많은 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할 때 연구인력만 12명을 채용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난 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해외 공장 건설에 나서자 화인의 매출 역시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 성장률은 40%에 이르렀다. 자동차 엔진 조립설비 중 하나인 엔진세척기 분야에서 국내시장의 80%를 차지하는 화인은 이제 미국 중국 인도 등 해외 자동차 공장으로도 수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대표는 화인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기술력이었다고 단언한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우리 회사는 막대한 시설설비를 투자해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다. 연구인력 개개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며 “전문 엔지니어들은 하루아침에 키울 수도, 스카우트할 수도 없는 만큼 구조조정은 사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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